잼늬 블로그

변주

2021. 7. 16.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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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에도 없던 물건을 굳이 구매해서 들기 쉽게 손잡이를 달아주고 무거워서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가면서 낑낑 거렸고 2시간 거리를 달려서 집에 도착했다. 건물에 들어서기 직전에 빗방울이 팔을 때렸다. 하늘을 봤다가 땅르 보니 빗방울에 젖어가기 시작했다. 물을 탔는데 진해지는 아이러니였다. 별생각없이 비우고 움직였다가 그때 깨어났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우산도 없었고 손가락은 아파왔다.

  구름이 잔뜩 끼어 누가봐도 비가 쏟아질 날씨에도 비는 오지 않았고 누가봐도 쨍쨍한 날에 비가 쏟아졌다. 거추장스러워서 우산을 들고 다니지 않게 된 것은 중학생 때 내게 우산을 씌워줬던 사람에 대한 기억 때문만은 아니다. 핑곗거리로 항상 끄집어 내는 기억인데 그냥 귀찮은 것이다.

  비가 오는지 확인할 때는 하늘이 아니라 바닥을 봐야한다. 반대. 변주라고 했다가 사람을 무안하게 만든 사람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직도 되도않는 인격 뒤에 숨어 꿈을 팔며 다닐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좀 나아졌다. 가슴을 펴고 다니고 걸음은 빠르다. 살짝 부딪힌 아저씨를 화술로 돌려 보냈다. 반말에서 존대로 바뀐 상대의 태도에 새삼 말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다. 겸손. 실제는 말이 통하는 상대라는 안도감과 내 화술에 대한 자신감이다.

  유치한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유치한 것을 마주하니깐 살짝 위화감이 들었다. 사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의도가 뻔히 눈에 보이는데 나쁘지는 않지만 노골적이게 맞춰주는 건 사양이다. 언제까지 컨셉을 유지할지는 지켜볼 예정이다.

 마음에도 없던 물건을 샀다. 살까말까 할 때는 사지 말라는 누군가의 글을 봤었다. 그 말이 맞다. 난 오늘 물건을 사지 말았어야 했다. 가까스로 비를 피하는 일도 없었을 테고 낑낑거리면서 손이 아플일도 없었을 것이다. 번뇌. 오래된 만화책이 떠올라서 자기전에 잠깐 보기로 했다. 모으다가 말아버린 파란색의 것. 어쨌거나 비를 피했고 물처럼 흐르듯이 회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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