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늬 블로그

728x90

 

#3

 

 

한자와 나오키에 이어서

명작을 다시보기 시작했다.

언제 봤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좋은

인상은 남아 있다.

 

배금주의와 보편적인 정의가

충돌하는 부분에서 재미가 있다.

마유즈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반적인 정의를 위해서 뛰어다니지만

코미카도는 클라이언트가 정해지면

전력을 다해서 변호한다.

결국에 마유즈미는 코미카도를

쓰러뜨리기로 하지만 그것이

보편에서 특수로 넘어가는

경이로운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정의가 타자의 정의라고

굳게 믿고 있던 게 깨지고 나면

정말로 무엇이 정의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극에서 코미카도가 말했듯이 우리는 신이 아니다.

모두가 잘 되는 합의점으로 마무리되면

더할나위없이 좋겠지만 그건 책에서나 그렇다.

중요한 것은 현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할 것인가이지 세상을 전부 이해한다고

판단하여 자신의 정의가 세상의 정의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공정한 관객이 되는 일이다.

 

11화에서 마유즈미의 희생으로

승소하게 된 코미카도가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알리는 자리에서

한 노인의 머리를 두드리는

장면에서 전율.

 

がにまた (가니마타)

뜻) 안짱다리

 

결말에서 태도가 변한 게

뚜렷하게 보여서 부담이 없었다.

 

[기억에 남는 대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동정심 아닌가?"

(정의라고 생각하고 하는 행동이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공부만 해왔던 너는 공부도 못하는 치하루를 깔본 게 아니야,

공부는 잘 하지만 요령이 없는 너는

공부는 못하지만 요령있는 그녀를 질투하고 있었어"

(추측일지도 모를 일, 타자의 평가만큼 냉정한 것은 없다)

 

"외면하고 싶은 과거를 향해 맞서야만 하는 때도 있다"

(돌아서서 마주할 용기가 있다면 말이다)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현실적으로 얘기를 하자면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한다)

 

[사오리]

 

*스포주의*

 

사오리의 죽음에 대한

비밀이 풀렸을 때 든 생각.

작품과는 관계없지만

어린아이라고 생각되어져왔지만

알고보니 햄스터였다.

여기에서 보통의 반응은 실소가 터지거나

얼탱이가 없어 하거나이다.

나도 물론 그렇게 반응을 했고

그냥 갑자기 생명의 가치가

물리적인 크기와 종에 따라서

매겨지고 있는 것과 그것에

동의라도 하듯이 그렇게

생각하고 반응한 내가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다.

인간은 스스로가 목적이 아니라

생물은 스스로가 목적이 맞는 게

아닐까 한다.

 

[SP]

 

'합창도 솔직히 좋아하지 않아요'

 

이지메를 이지메라고 했을 때

이지메의 대상이 되는 아이러니.

 

분위기를 따르지 않았을 때

배척당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서로를 한 쪽으로 몰아간다.

그 분위기를 이용하여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유도하여 법정에 서게 만드는 아이러니.

 

증명할 수 있는 사실보다는

의도한 사실을 가지고

원하는 방향으로 재판을

이끌어 나가는 일이 보편적인

가치관과 충돌한다.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